(수필) 건강하세요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강석구 2015. 1. 11. 12:19
 

백일장 최우수작품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2


[[ 불효부모사후회(不孝父母死後悔) 이는 주자십회에 나오는 글로써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효도를 다하지 못하면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뒤에 후회를 한다는 아주 그 뜻이 깊은 교훈 삼아 마땅한 글귀이다.]]

무릇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그 태어난 뿌리를 중요시하고 중요한 만큼 한치의 범위도 벗어남 없이 뿌리의 근본을 지켜 나를 낳아서 잇게 하시고 온갖 우주의 만물을 더불어 내 것과 같이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그 어떤 불행 속에서도 차마 잊어서는 안될 세상에서 제일 으뜸 이가는 효의 길이며 禮와 道라 하겠다. 있으면 있는 만큼에서 없으면 없는 만큼에서 온갖 정성으로 부모님을 봉양하고 보살핀다면 부모님은 결코 그것이 나물국일지라도 서운타 하시지 않고 되려 자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즐거워하신다. 하지만 효라는 것은 무엇을 꼭 이렇게 하여야 한다는 원칙은 없다.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또는 형편에 따라서 그 때 그대 주어진 여건을 고려하여 비록 아주 적은 것일지라도 부모님께서 즐거워하시고 행복에 겨워하실만한 짓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남들이 보아 좀 이상한 일들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주어진 여건이 그것밖에 없다면 은,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남들이 일년에 한 번 있는 생신 날에 진수성찬을 차려 대접하는 것을 효도라고 한다면 나는 보리밥일망정 언제나 부모님 곁에서 따듯하게 매일같이 대접하고 환한 얼굴로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해드리는 것 또한 그에 못잖은 효도일 것이다. 이것을 모르고 가끔 찾아뵙고 용돈 몇 푼 주는 것으로, 고기 근이나 사드리는 것으로 효를 다했다 고 생각하는 요즘 시대의 사람들 어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까 많은 나의 시간을 조금 하래하여 부모님께 드린다면 좀더 밝은 세상이 될 것이다.

다만 문명이 발달하고 서구문화를 받아드려 살아가야 하는 우리나라 실정과 그에 상응하여 단 하나 먹고 살아가기 위한 생활 경쟁시대에서 살아가야 하다보니 옛날처럼 부모님을 위하고 섬기는 방법마저 저버린 것이 안인( 유교사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 하다. 하지만 아무리 유교사상을 비판하고 햇가족 문화를 선호한다 한들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서는 한치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진정한 인생의 진미와 삶의 의미를 깨 닮지 못하여 살아도, 살아도 살아가는 것이 아닌 이왕지사 태어난 목숨이니 죽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하는 인간의 탈을 쓰지 못하고 살아가는 죽은 삶이 아니겠는가. 부모가 있음으로 해서 내가 있음이니 고요바람(아주 약한 바람)에서 싹쓸바람 (가장 강한 바람)에까지 내 몸뚱이가 부서지고 깨어질지라도 부모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은, 결단코 물러서지 않는 자식의 도리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감탄하리만큼 지극정성으로 부모님을 봉양하고 모시는 당대에 보기 드문 존경할만한 사람들이 도처에 많이 있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본을 받으려 한다거나 가까이 다가가 친함을 하려하기보다는 눈살을 찌푸리는 미소로 무심결에 지나치는 인정이 메마른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생각하면 어지간히도 안타까운 일이 안일 수 없다. 단지 나의 꿈과 이상을 위해서 혹은 출세를 위해서 부모님 곁을 떠나는 사람들 또는 아내의 권유에 못 이겨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자식들 모두 가다 어쩔 수 없어 그런 다 할지라도 생각하면 이는 자신의 안 의와 자신만의 삶을 영위해 살아가기 위한 허울 좋은 핑계일 뿐 부모님을 의하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하지 못하고 고마움을 모르는 까닭이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는 그래도 내가 부모님을 위해서 제일 많은 효도를 하였노라고 유산의 절반 이상을 가지려 하는 끊네 부모님의 근본을 되찾지 못하고 형제자매들의 마음마저 고통으로 몰아넣는 죽어 인도환생 하지 못할 자식은 되지 말아야겠다. 어버이날 부모님 가슴에 꽃한송이 달아드리는 것 그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안일 것이나 요즘은 웬만한 사람들이면 거의가 다 꽃한송이쯤은 달아드린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어도 이미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안 계시어 가슴아픈 영전앞에 화려한 꽃을 받치고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울어본들 이미 때늦은 후회의 순간일 뿐이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신 자식들은 이들의 왜 그리도 마음 아파하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生과 死라는 갈림길에서 한 번 헤어지면 세상의 그 어떤 인연의 고리로도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한번 헤어지면 그만인 인연인 것을 왜 모르고 더러는 부모님을 버림을 주며 이를 보고도 수수방관[袖手傍觀] 하는 것인지 부모님을 버리는 사람들이나 이를 보고 수수방관하는(그냥 지나치는) 사람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한 시대에 태어나서 한 시대에 살아가면 한가족인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힘들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남에게 도움을 청하고 조언도 부탁하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남에게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었으면 그 대가가 크던 적든 갚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나의 부모 남의 부모 편견 없이 끝없는 자애와 사랑으로 효를 다해야 할 것이다. 보라 나의 부모 위함마저 사랑이 넘쳐 알지도 듣지도 못한 버려진 사람들을 나의부모인양 평생을 사랑으로 보시고 살아가는 저~기 저 천사 같은 사람들을.

오래 전 햇살이 따뜻이 피어 내리는 춘삼월에 음성 꽃동네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곳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다름않인 온전하게 걷지를 못하는 얼굴에 주름 꽃만 가득 피어난 노인들이 햇볕 받은 담에 몸을 웅크리고 기대인 채 온종일 그 볕이 마르지않기많을 바라는 듯 한나절내 그런 모습으로 있었으며 머리에 하얀 천사표 두건을 쓴 수녀님 발걸음 머무는 곳에서는 창문을 흔드는 듯한 비명소리가 쉬임없이 들려나오고 있었으며 그 비명소리 밑에서는 비둘기 날갯짓 소리도 멀리 한 채 그들의 눈물인양 유리창에 맺힌 성애가 주루루 녹아 흐르고 있었다. 비단 꽃동네뿐이겠는가 혹은 단체의 이름으로 더러는 개인의 마음으로 종교가의 입장에서 성직자의 마음으로 오늘도 그들은 우리들이 모르는 또하나의 세상이라는 그늘진 곳에서 오로지 봉사라는 이름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멀쩡한 육신이면서도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마음의 장애자임을 깨 닮아 부끄러운 마음에 성모마리아 상이 계신 산밑으로 올라가는 데,

길옆 화단에 모 대통령의 성과 이름의 팻말을 달아놓은 오래 전에 심어진 기념식수 한 그루가 있었다. 그래 일 국의 국왕은 이렇게 해서 자신이 여기에 왔다 갔음을 만인에게 알리고 꽃동네에서 평생을 혹은 일생을 더러는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모르고 이름 또한 모른다. 왜일까? 오랫동안 환자들을 보살피고 남의 부모를 내 부모처럼 의하고 그 누구인가의 자식의 도리를 대신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먼저 세상 사람들이 알아야 할 것이고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인데 그곳에 그들이 있는 줄을 모르니 고마워 하는 이 또한 없을 것이 안이겠는가. 정녕 고마운 사람들이란 자신과는 아무런 연 관도 없으면서 자신의 인생과 삶을 버리고 내 부모 내 형제처럼 의하고 보살피는 이들이 이렇듯 따로 있는데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때국x이 받는다는 속언처럼 고마움은 높으신 님들이 다 가져간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내가 그들처럼 사랑과 봉사를 하지 못하면은 그들만이라도 의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용기를 잃지 않고 영원한 천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아야 함은 물론이고 부모님의 은혜 그 다음으로 그 어느 누구의 무엇보다도 칭찬 받아 마땅한 진정 이 시대에서 제일 으뜸으로 고마워해야 할 분들이다. 물론 이런 말은 누구라도 다 알고있는 사안들이고 말 할 수 있는 말들이지만 세상 인심이 너무나도 메마르고 천륜이 깨어지고 형제간의 우애가 금이 가고 부부유별이 죽어 서로 원수 짖는 이 썪어가는 세상이 너무나도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 금할 길이 없어 두서 없는 글 몇 자 적어보았다. 하니 부모님을 모시든 못 모시든 간에 정철 선생님의 말씀인 평생에 고처못할 일이 효뿐임을 명심하여 부모님을 섬김에 있어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며 작은 친절에서부터 고마워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나이 어린 젊은이들은 부모님을 섬김에 있어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이 효인지 그 근본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어른들께 조언을 구하여 좋은 책을 읽되 우선 명심보감을 읽어보면 많은 것을 깨 닮게 될 것이다.

상가승무노인탄(喪歌僧舞老人嘆)

옛날 어느 임금님께서 민정을 살피기 위하여 평상복으로 갈아입으시고 내관 몇 명만 거느리고 장안(지금의 서울시내)을 살피시다가 남산골 어느 다 쓰러져가는 김생 원이라는 집 앞에서 그만 거동을 멈추었다. 이유인 즉은 노랫소리가 들리는 데 그 목소리로 짐작하면 젊은이가 분명하고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이 또한 소리로 보면 늙은이가 분명하며 춤을 추는 사람은 머리칼이 없는 것으로 보아 필경 중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생각하니 괴이한 노릇이 안일 수 없다. 임금님은 그 연유를 알아보고 가리라 생각을 하고는 내관에게 호롱불을 끄게 하고 주인장을 찾았다,


얼마후 노인인 듯한 사람이 뉘시오 하는 대답과 함께 예 지나가던 과객이 온데 불을 좀 얻을까 합니다 하니 주인은 그라지요 하고는 방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불을 얻어 붙었으니 이제는 돌아가야 하는데 목적이 불이 안인지라 주저주저 하고 있는데 주인이 먼저 임금님의 궁금해하는 마음을 알아차리고는 예 우리 집 광경이 이상하셔서 그러시는군 요 하고는 방으로 들으라고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임금님은 조금 사양하는 척 하시다가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수인사를 나누고 난 후 방안을 둘러보니 그런데 이 광경을 좀 보소 진수성찬을 차려놓았는데 음식으로 보면 상갓집이요? 노래부르고 춤을 춘 것으로 보면 경사인데 노인장은 왜 울었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노인장은 임금님의 궁금해하는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약주 한잔 권하고 나더니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오늘이 내자(아내)의 기일 날인데 너무나도 살림살이가 어려워서 제사상을 차릴 엄두도 못 낼 형편이지요. 자식이라고 하나 잇는 것은 보는 과거마다 낙방을 하니 가산은 더욱 기울어서 냉수나 한 그릇 올리고 제사를 지내야 할 형편인데 어찌된 일인지 이렇게 진수성찬을 차린 것이 안이겠습니까? 그래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데 음식을 차려 나르는 며늘아기가 평소에 쓰지 않던 수건을 머리에 쓰고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하도 이상하여 그 연유를 물으니 며늘아기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시어머님 삼년상을 치르는 날이 온데 이냥 보내드리기에는 너무나도 큰 불효를 끼쳐드리는 것 같아 머리칼을 아버님 허락도 없이 잘라 내다 팔아서 제물을 장만하였노라고. 그래서 나는 며늘아기의 기특한 효심이 내심 기쁘고 고마워서 울은 것이며 이 가난 때문에 며늘아기의 그 곱고 길던 삼단 같은 머리칼을 자르게 하였구나 하는 죄지은 생각에 탄식을 한 것이지요. 그러자 아들은 상중 입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쁘게 할 요량으로 노래를 부른 것이며 며늘아기는 춤을 춘 것이랍니다. 그러니 손님께서 이상하게 생각 할 박게요.

노인장의 말을 다 듣고 난 임금님은 노인장에게 이렇게 말을 하였습니다. 나와는 먼 친척별 되는 사람이 과거장의 시관( 과거를 총괄하는 관직)으로 있는데 듣자하니 몇 월 몇 일 날에 임시과거령( 서울 장안사람들만 치르는 과거)이 내려진다는 데 그때 한번 아드님께서 응해보시지요 하고는 궁궐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관에게 명하기를 몇 일 몇 시에 임시 과거령을 선포하되 남산골 김생 원의 집에도 틀림없이 방을 붙이라고 명하셨다. 그리고 김생 원은 이튿날 밖에 나와보니 정말로 방이 붙어있는 것이었다.

김생 원은 아~ 그분이 보통 분이 안이었구나 하고는 부랴부랴 날짜에 맞추어 과거장에 도착을 하고 보니 임시 과거여서 그런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얼마후 시관께서 시제를 내다 걸었는데 시 제목이 다름 안인 상가승무노인탄(喪歌僧舞老人嘆)이었다. 김생 원이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바로 몇 일전 자기 집에서 잃어났던 일이 안인가 물론 다른 과객들이야 이 뜻을 어찌 알 수 있을까. 하지만 김생 원은 서슴없이 자신의 집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적어서 제출을 하고는 장원을 하였다. 그리고 임금님께서 따라주시는 어사 주를 받아 머리를 돌리고 마시고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임금님께서 고개를 들라 하시는 명을 내리시는 것이었다. 고개를 들고 보니 환하게 웃음을 짖고 계시는 임금님의 용안을 보니 바로 자신의 집에 왔던 그 분임을 알고는 성은이 망극합니다. 하고는 큰절로써 은혜와 고마움에 감읍하였다는,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


많은 사람들이 적으나마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지금 우리 사는 세상도 이와같은 효의 사상과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 풍토가 이루어졌으면 참 좋겠다.

2001.6. 8 강 석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