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구 2001. 12. 13. 10:53
*방황


나는 가고 있다.
새롭고 낯설은 길을
미래에서 온 화신을 찾기 위해
나는 오늘도 가고 있다.

나는 가고 있다.
누군가가 점처놓은 마술의 길을
한뼘 내 꿈을 키우기 위해
연극으로 꾸며진 무대의 길을
나는 오늘도 가고 있다.

나는 가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길을
웃음과 쾌락으로 그려진 그림을 찾기 위해
스스로 모델의 주인공을 탐닉하며
나는 오늘도 가고 있다.

나는 가고 있다.
정상도 없고 성공도 없는
찾아도 모습 없고 불러도 대답 없는
내 것이 될 수 없는 인생의 굴레 속에서
멋진 나를 꿈꾸다가 돌아가는 길 위에
나는 방황이라고 쓴다.!


**방황에 대하여.

사람들뿐 아니라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무엇인가를 내 것으로 소유하기 위해서 늘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 속에서 너무나도 많은 것을 추구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타고난 욕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지키며 취하고 살아야 할 질서의 영역이라는 곳을 벗어나면은 사람들은 그를 보고 나쁜 사람이라고 한다. 이렇듯 정해진 영역 안에서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하여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능력의 영역 속에서 보다 더 낳은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영역을 벗어났다면 은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창조이고 개척이며 연구이며 자신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노력이 안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방황으로 보일지 몰라도 자신에게는 일생 일대의 크나 큰 사업이 안일 수 없다. 그러기에 결코 방황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며 다만 자신의 욕심에 만족할만한 것을 얻지 못했을 때 비로소 방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방황이 벌써 자신에게는 남이 보지 못한 아주 많은 것을 보고 느꼈을 것이기에 절대 방황이 안일 것이다. 이미 많은 것을 얻었고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언어를 만들었고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았을 것이니 잃은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발전을 위해서 방황하는 자를 격멸시 하지말고 격려를 해주면 어떠할지. 혹시라도 주어진 자신의 영역 안에서 그 목숨하나 이어가기 위하여 어항 속의 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고 있지는 않는 것인지.

때문에 나 자신을 버리지 않는 방황이라면 멈추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물론 무사히 돌아왔을 때 의 이야기가 되겠다. 그러면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느낀 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을 할 것이다. 다만 새로운 것을 알면 깨 닮은 자가 되는 것이며 그것을 남에게 전하면 지식에 불과한 것이다. 남들과 경쟁을 해서이길 수 있는 길은 지식인이 되지 말고 깨 닮은 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그 깨 닮음을 남에게도 주어야 하겠다. 그렇다고 죽음의 직전에서 전해주면 안 되는 것이며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핵심적인 역군이 될 것이다.

옛날에 어는 父子가 짚신을 만들어 팔며 살아가는데 웬일인지 아버지가 만든 짚신은 값을 더 받는 것이며 아들이 만든 짚신은 값을 덜 받는 것이었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연유를 물었으나 아버지는 가르처주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아들에게 한마디 유언을 하였는데 그 유언의 말인�은 털을 단 두말만 하고 말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털을" 하고 말이다. 털을 이란 말을 털을 잘 다듬어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진작에좀 가르쳐 주었더라면 좀더 여유 있는 살림을 꾸려갈 수 있었을 텐데?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의 기술을 남에게 쉽사리 전수하지 않는다. 좋은 현상은 안이다.


강 석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