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반갑습니다
*편지. 왜 죽었어
강석구
2002. 1. 30. 12:24
*편지. 왜 죽었어
왜 죽었데.?
응,
숨을 못 쉬어서 죽었데 !
그래 왜 숨을 못 쉬었는데?
이렇듯이 하기 좋은 말로
가끔 어르신들 하시는 말씀을 어린 시절 상갓집에서 듣곤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세상사는 이웃들이 더러 그런 말을 하는 것 또 들었다.
그래. 숨을 못 쉬어서 죽었겠지. 어린 시절에는 나 그리 생각을 하였는데.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아니다. 죽었기 때문에 숨을 쉬지 못 하는 것이다. 죽지만 안았다면 그들은 분명 우리들과 같이 오염된 공기나마 호흡으로 산소를 들이마실 것이다.
죽은 자 스스로 숨을 쉬지 않아서 죽은 자 있겠는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숨이 쉬어지지 못하니 죽은 자 된 것이지 누가 죽어 명복을 빌어 받고 싶겠는가. 영원불변이라는 말은 사랑하는 이들은 자주 소용되는 강한 사랑의 표현이 되기도 하지만. 세상에 영원불변이 어디 있단 말인가. 영원불변이란 자신이 죽을 때까지를 말함일 터인데.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남겨두고 죽으려는 자 있으리 오늘도 어디에선가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죽은 자 있으리니 그들의 명복을 빈다.
다만 그 죽은 자들이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서
살아있는 자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웃음을 남기고 죽었는가 아니면 슬픔을 남기고 죽었는가. 생각하기 따라서는 양면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웃음을 남기고 죽은 자 1은 이웃 위해 살다가니 웃고 죽은 자이고 웃음을 남기고 죽은 자 2는 이웃에 아픔을 주었으니 잘 죽었다고 이웃에게 웃음을 남기고 죽은 자이다. 슬픔을 남기고 죽은 자 1은 이웃에게 웃음을 남겼으니 이웃들에게 죽음을 슬퍼하게 한 죽은 자이고 슬픔을 남기고 죽은 자 2는 이웃에게 아픔을 주었으니 살아온 삶을 후회하면서 슬픔을 남기고 죽은 자이다.
이렇듯 죽음도 죽음 나름으로 죽어도 죽음이 안인 죽음이 될 수 있고 아니면 영원히 죽은 자 그대로 죽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웃음을 남기고 죽은 자는 죽어도 죽음이 안인 산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면 죽음은 예술이라고 말을한 세계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인도의 라즈니쉬의 말처럼 살아있는 것도 안인 죽은 것도 안인 완전히 살아있는 사람은 완전히 죽은 자이다 라고 했듯이 살아있다고 해서 우리네가 지금 살아있는 것이련가. 우리네의 죽음 또한 언제일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뿐인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예술로 승화시켜 남기고 죽는다면 살아있음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예술은 과연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며 가리키는 것일까? 정의는 내릴 수 없겠지만, 예술? 우리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것, 아니면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것 생각하면 그것만은 안인 것 같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예술적이라고 감탄을 하고 평론가 아닌 평론 자들이 그리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 평론 자들의 말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아름다움을 남기고 죽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 나름대로 견해의 차이가 있고 바라보는 시각적 차원도 서로 각자 틀릴 것이며 살아가는 인생관 또한 틀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아가는 삶 속에서 가장 상이한 공통점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 닮아 그것에서부터 찾아 행하여 만들고 이루어서 남기면 될 것이다. 그 남겨지는 것에는 무엇이라고 꼬집어말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능력 여하에 따라서 남기면 될 것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아름다움을 남길 것인가. 우리들이 아름 답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많은데 그 중에서 무엇을 남겨야 예술이 될까?
그러나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은 진정 아름다움이 안이다 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남겨지는 아름다운 것은 예술이 안인 것이다. 자칭 예술가라고 하시는 님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 예술이라고 말을 할 만큼 아름다운 것 그것은 다름 안인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줄 수 있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밥먹여 주느냐고 누군가가 말하더니만 그래 사랑은 분명 밥을 먹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사랑은 기쁨과 희망과 기다림이며 행복이니. 이렇듯 즐거운 마음만으로도 몇 끼니는 굶어도 견딜 수 있으니 밥이 안이던가.
그러니 당연히 사랑이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인가 구태여 예를 들지 않아도 다 아는 사전일 것이니 생략하겠다. 사랑 사랑이라는 두 글자만 읽어도 기분이 좋지 않은가 그러니 사랑을 남겨야 하겠다. 누군가를 위해서 물질적인 것을 넘겨줬다면 그것은 물질을 남긴 것이 안인 사랑을 남긴 것이 된다. 여기에서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이며 잠깐 헷갈리는 생각이면 안될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남겼다면 물질이 안인 사랑인 것이다. 그 사랑을 받은 이들로 하여금 오래 기억이 되고 감사함과 고마움을 표할 수 있는 건네줌이라면 이는 모두가 다 예술인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니까. 그러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되는 것이다.
다만 죽음에 대해서 어찌 죽었든 간에 죽은 자 앞에서는 슬픈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어디에선가 나름대로 살다가 죽은 이들에게 명복을 비러 주어야겠다. 사랑을 깨 닮지 못하고 죽었을 뿐이지 사랑이 없어서 남기지 못한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예술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일이다. 이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 우리 사랑이라는 이름의 선을 넘지 못한 이웃들에게 따듯하고 풍성한 가을의 편지를 써서 다가오는 겨울로 발신해야하겠다.!
강 석 구
왜 죽었데.?
응,
숨을 못 쉬어서 죽었데 !
그래 왜 숨을 못 쉬었는데?
이렇듯이 하기 좋은 말로
가끔 어르신들 하시는 말씀을 어린 시절 상갓집에서 듣곤 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세상사는 이웃들이 더러 그런 말을 하는 것 또 들었다.
그래. 숨을 못 쉬어서 죽었겠지. 어린 시절에는 나 그리 생각을 하였는데.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아니다. 죽었기 때문에 숨을 쉬지 못 하는 것이다. 죽지만 안았다면 그들은 분명 우리들과 같이 오염된 공기나마 호흡으로 산소를 들이마실 것이다.
죽은 자 스스로 숨을 쉬지 않아서 죽은 자 있겠는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숨이 쉬어지지 못하니 죽은 자 된 것이지 누가 죽어 명복을 빌어 받고 싶겠는가. 영원불변이라는 말은 사랑하는 이들은 자주 소용되는 강한 사랑의 표현이 되기도 하지만. 세상에 영원불변이 어디 있단 말인가. 영원불변이란 자신이 죽을 때까지를 말함일 터인데.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홀로 남겨두고 죽으려는 자 있으리 오늘도 어디에선가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죽은 자 있으리니 그들의 명복을 빈다.
다만 그 죽은 자들이 어떻게 죽었느냐에 따라서
살아있는 자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웃음을 남기고 죽었는가 아니면 슬픔을 남기고 죽었는가. 생각하기 따라서는 양면성이 있는 이야기지만 웃음을 남기고 죽은 자 1은 이웃 위해 살다가니 웃고 죽은 자이고 웃음을 남기고 죽은 자 2는 이웃에 아픔을 주었으니 잘 죽었다고 이웃에게 웃음을 남기고 죽은 자이다. 슬픔을 남기고 죽은 자 1은 이웃에게 웃음을 남겼으니 이웃들에게 죽음을 슬퍼하게 한 죽은 자이고 슬픔을 남기고 죽은 자 2는 이웃에게 아픔을 주었으니 살아온 삶을 후회하면서 슬픔을 남기고 죽은 자이다.
이렇듯 죽음도 죽음 나름으로 죽어도 죽음이 안인 죽음이 될 수 있고 아니면 영원히 죽은 자 그대로 죽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웃음을 남기고 죽은 자는 죽어도 죽음이 안인 산 자가 되는 것이다. 왜냐면 죽음은 예술이라고 말을한 세계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인도의 라즈니쉬의 말처럼 살아있는 것도 안인 죽은 것도 안인 완전히 살아있는 사람은 완전히 죽은 자이다 라고 했듯이 살아있다고 해서 우리네가 지금 살아있는 것이련가. 우리네의 죽음 또한 언제일지 예측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뿐인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자신의 삶을 한 편의 예술로 승화시켜 남기고 죽는다면 살아있음이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예술은 과연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며 가리키는 것일까? 정의는 내릴 수 없겠지만, 예술? 우리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것, 아니면 눈으로 보아 아름다운 것 생각하면 그것만은 안인 것 같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 예술적이라고 감탄을 하고 평론가 아닌 평론 자들이 그리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 평론 자들의 말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다고 한다면 아름다움을 남기고 죽으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사람 나름대로 견해의 차이가 있고 바라보는 시각적 차원도 서로 각자 틀릴 것이며 살아가는 인생관 또한 틀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살아가는 삶 속에서 가장 상이한 공통점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 닮아 그것에서부터 찾아 행하여 만들고 이루어서 남기면 될 것이다. 그 남겨지는 것에는 무엇이라고 꼬집어말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능력 여하에 따라서 남기면 될 것이다, 그러면 무엇으로 아름다움을 남길 것인가. 우리들이 아름 답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많은데 그 중에서 무엇을 남겨야 예술이 될까?
그러나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은 진정 아름다움이 안이다 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그래서 물질적으로 남겨지는 아름다운 것은 예술이 안인 것이다. 자칭 예술가라고 하시는 님들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 예술이라고 말을 할 만큼 아름다운 것 그것은 다름 안인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줄 수 있는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밥먹여 주느냐고 누군가가 말하더니만 그래 사랑은 분명 밥을 먹여주고도 남음이 있다. 사랑은 기쁨과 희망과 기다림이며 행복이니. 이렇듯 즐거운 마음만으로도 몇 끼니는 굶어도 견딜 수 있으니 밥이 안이던가.
그러니 당연히 사랑이 아름다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이 무엇인가 구태여 예를 들지 않아도 다 아는 사전일 것이니 생략하겠다. 사랑 사랑이라는 두 글자만 읽어도 기분이 좋지 않은가 그러니 사랑을 남겨야 하겠다. 누군가를 위해서 물질적인 것을 넘겨줬다면 그것은 물질을 남긴 것이 안인 사랑을 남긴 것이 된다. 여기에서 오해가 없어야 할 것이며 잠깐 헷갈리는 생각이면 안될 것이다. 상대방을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남겼다면 물질이 안인 사랑인 것이다. 그 사랑을 받은 이들로 하여금 오래 기억이 되고 감사함과 고마움을 표할 수 있는 건네줌이라면 이는 모두가 다 예술인 것이다. 그들로 하여금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니까. 그러면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되는 것이다.
다만 죽음에 대해서 어찌 죽었든 간에 죽은 자 앞에서는 슬픈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어디에선가 나름대로 살다가 죽은 이들에게 명복을 비러 주어야겠다. 사랑을 깨 닮지 못하고 죽었을 뿐이지 사랑이 없어서 남기지 못한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지금 우리는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예술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새겨 볼 일이다. 이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고 있다. 우리 사랑이라는 이름의 선을 넘지 못한 이웃들에게 따듯하고 풍성한 가을의 편지를 써서 다가오는 겨울로 발신해야하겠다.!
강 석 구